주막거리
- 작성일
- 2016.12.16 15:29
- 등록자
- 관리자
- 조회수
- 1491
일제 시대 전주 이씨가 이 곳에 주막을 차려 수비면 신암리의 비상광(碑霜鑛)에서 채굴한 버림을 싣고 옮기는 말 달구지가 하루 3,40대가 이 곳을 지나면서 주막에서 쉬어 갔기 때문에 주막거리라고 하였습니다.
일제 시대 전주 이씨가 이 곳에 주막을 차려 수비면 신암리의 비상광(碑霜鑛)에서 채굴한 버림을 싣고 옮기는 말 달구지가 하루 3,40대가 이 곳을 지나면서 주막에서 쉬어 갔기 때문에 주막거리라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