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의 유래와 의미
- 작성일
- 2015.06.08 21:09
- 등록자
- 대티골사람들
- 조회수
- 3412
■장승의 유래
장승의 기원은 솟대·선돌·신목(神木) 등과 함께 신석기·청동기 시대의 원시 신앙물로서 유목·농경 문화의 소산으로 파악된다. 일종의 수호신상으로서 씨족·부족민의 공통적 염원을 담은 제정일치 시기 지배이념의 표상으로서 기능하다가 삼국 시대 들어 중앙집권적 국가 기틀이 마련되고 불교·도교·유교 등의 통치 이데올로기가 체계화됨에 따라 전승됐다.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장승은 민간신앙의 저변으로 흘러들었다. 외래신앙이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전래의 민속신앙과의 타협이 불가피한 가운데 이처럼 불교와 무관한 장승이 사찰에 등장한 것이다.
조선 후기의 새로운 장승문화에서 그 이름이 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방어대장군·진서대장군·상원주장군·하원당장군 등으로 붙여졌다.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면면히 이어온 장승은 16∼17세기 임진·병자 양란을 거치면서 공동체문화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된다.
장승의 기원은 솟대·선돌·신목(神木) 등과 함께 신석기·청동기 시대의 원시 신앙물로서 유목·농경 문화의 소산으로 파악된다. 일종의 수호신상으로서 씨족·부족민의 공통적 염원을 담은 제정일치 시기 지배이념의 표상으로서 기능하다가 삼국 시대 들어 중앙집권적 국가 기틀이 마련되고 불교·도교·유교 등의 통치 이데올로기가 체계화됨에 따라 전승됐다.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장승은 민간신앙의 저변으로 흘러들었다. 외래신앙이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전래의 민속신앙과의 타협이 불가피한 가운데 이처럼 불교와 무관한 장승이 사찰에 등장한 것이다.
조선 후기의 새로운 장승문화에서 그 이름이 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방어대장군·진서대장군·상원주장군·하원당장군 등으로 붙여졌다.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면면히 이어온 장승은 16∼17세기 임진·병자 양란을 거치면서 공동체문화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된다.
■장승의 의미
장승은 경계표시나 이정표 또는 수호신으로서 우리 민족의 생활 속에 뿌리 깊게 자리해 온 2천여 년의 역사를 지니며 변화하고 전승되어 온 민속신앙의 조형물이다. 장승은 일반 민중들이 장구한 세월을 거치면서 형성한 일반 민간인들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형성됐다.
돌무더기, 선돌, 솟대, 당산 등과 어울려 부락 단위의 신성으로 승격되기도 하고 민간인들의 개인적 치성의 대상으로도 여겨져 왔다. 장승을 훼손하면 액운을 만나게 된다고 하여 장승에 신성을 부여한다.
장승은 그 역할에 따라 수호신, 수문장, 방위신, 이정표, 노신, 경계선, 남근, 호법신 등의 다양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역할은 한 가지만 담당하는 경우는 드물고 여러 가지 기능을 겸해 가지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