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문인 이문열
- 작성일
- 2017.07.26 10:31
- 등록자
- 대티골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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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1948년 경북 영양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수학했다
불우한 유,소년기[편집]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에서 출생하였으며 경상북도 영양군에서 주로 성장한 그는 한국 전쟁 당시 공산주의자였던 그의 아버지 이원철(李元喆)이 홀로 월북하였다. 그의 아버지 이원철이 월북한 이후 그는 어머니 조남현(曹南鉉)의 슬하에서 5남매가 경상북도 영양군 등지를 떠돌아다니며 어렵게 살았다.
초등학교 졸업을 제외하고는 모두 검정고시이며, 이후 안동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1965년 안동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한동안 방황하다가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1968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입학했다. 1970년에는 사법시험에 응시한다며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중퇴하였다. 그러나 연좌제 등 여러 이유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사법시험에 실패한 뒤 1973년 결혼과 동시에 군대에 입대했다. 그의 이런 생활이 기초가 되어 자전적 소설인 《젊은 날의 초상》을 쓰게 된다.
문단에 데뷔[편집]
1977년 단편 《나자레를 아십니까》가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가작으로 당선되면서 문인으로 등단했다. 이어 '대구매일신문' 편집기자를 지냈다. 1979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새하곡(塞下曲)》이 당선되었다. 같은 해 중편 《사람의 아들》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전개하여 1980년대에 가장 많은 독자를 확보한 작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의 소설의 특징은 탄탄한 구성과 문장의 탁월함으로, 자전적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 있다. 주요작품으로는 《젊은날의 초상》(1981) 《황제를 위하여》(1982) 《영웅시대》(1987) 《변경(邊境)》 등이 있으며 《사람의 아들》 《그해 겨울》 《금시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소설집과 평역서인 《삼국지》와 《수호지》, 《초한지》가 있다. 또한, 동인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상문학상, 호암상(예술상) 등을 수상하였다.[1]
한편 유신과 제5공화국의 권위주의적인 통치를 빗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통해 유명해졌다. 작품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반장 엄석대의 합법을 가장한 폭력, 규율을 가장한 폭력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폭력의 의미를 다시 보게 하였는데, 이는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희화, 풍자한 것이기도 했다. 작가 본인이 밝히기를, 작품 전반에 나오는 국민학교 5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폭력적이고 반민주적인 독재 정권을 실리에 따라서 허락한 6~70년대 미국 외교 정책이고, 후반부에 등장하여 엄석대를 박살내놓은 6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경직되고 권위적인 이념'을 가리킨다[2]. 세종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았으며, 1998년부터 부악문원의 대표로 있다. 작품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의 작품들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영어, 일본어 등으로 그의 작품이 번역된 바 있다.
기타[편집]
2007년에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극우보수 비판 왜 안하나" 는 질문에 '전두환 때 말 못 한 게 많이 부끄럽다'고 말했다.[3] 전두환의 팔순 생일 잔치에 참석한 것으로 밝혀졌다.[4] 2009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석좌교수에 초빙되었다.
논란[편집]
마광수와의 논쟁[편집]
199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가시화된 한국사회의 보수와 진보의 논쟁에서 강연활동과 신문기고, 작품활동 등을 통해 보수주의 입장을 대변하고 진보주의 진영을 비판한다 하여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마광수는 이문열의 성공을 비판하기도 했다. 마광수는 1990년 1월에 언론에 발표한 글에서 이문열의 상업적 성공의 "근본적 원인을 대한민국 독자들의 교양주의 선호 현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5] 한편 이문열은 마광수의 작품을 구역질을 동반한다, 보잘 것 없다며 신랄하게 비판하였다.[6]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강준만은 이를 단순 언쟁으로 보지 않고, 가치관의 차이로 규정하였다.
페미니스트와의 논쟁[편집]
《선택》에서는 조선시대의 캐릭터를 빌려와 현대의 페미니즘을 비판하였다는 이유로 여성운동가들의 반발을 샀다. 1996년 잡지 세계의 문학의 가을호에 첫 연재를 시작하면서 논란이 되었는데, 이는 그가 작품의 주인공을 통해 페미니스트 계열 작가들을 비판한 것이 원인이 되었다.
진실로 걱정스러운 일은 요즘 들어 부쩍 높아진 목소리로 너희를 충동하고 유혹하는 수상스러운 외침들이다. 그들은 이혼의 경력을 무슨 훈장처럼 가슴에 걸고 남성들의 위선과 이기와 폭력성과 권위주의를 폭로하고 그들과 싸운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이혼은 '절반의 성공' 쯤으로 정의되고 간음은 '황홀한 반란'으로 미화된다. 그리고 자못 비장하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외친다.[7]
한국형 페미니즘의 과격성을 지적하고 페미니스트들을 공격하자, 공지영·이경자 등 여성 작가들은 그를 비난하였다.[7] 이와 함께 페미니즘 단체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나 1997년 3월부터 1년간 여성단체연합이 선정한 '여성 권익의 걸림돌[7]'로 뽑히게 되었다
뒤에 강준만은 자신의 잡지 인물과 사상 3권에 이를 인용하여 풍자하기도 했다.
1993년 신문연재소설 《오디세이아 서울》과 1999년 《전야,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 2001년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에서는 김대중과 추미애 등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맞지 않는 정치인들을 소설 속에서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이문열의 이와 같은 입장에 반대하는 일부 독자들이 2001년 자신이 구입한 이문열의 책을 단체로 버리는 "책 장례식"이라는 퍼포먼스를 열기도 했다.
진중권과의 1차 논쟁[편집]
2000년 2월 8일 중앙일보 2000.02.08일자 기사에 그는 일부 시민단체의 낙선운동 및 음모론을 겨냥하여 '홍위병을 돌아보며'라는 칼럼을 기고, 이들의 행동이 마오쩌둥의 홍위병을 연상시킨다며 일부 시민단체들의 과격한 행동을 나무라기도 했다.[8] 그러자 진중권은 같은 중앙일보의 2000년 2월 10일자 기사에 '이문열과 '젖소부인'의 관계?' 라는 제목으로 이문열의 홍위병론 및 음모론을 역 음모론으로 비판하고 '음모론(陰毛論)은 포르노다. 언젠가 이문열은 마광수를 질타했지만 정말로 부도덕하고 몰취향한 것은 바로 이 정치 포르노다